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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기록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는 왜 늦게 도착했나

D.958·959·960이 작곡 한 세기 뒤에야 레퍼토리의 중심으로 들어온 사정, 그리고 「유언」으로 듣지 않고 세 곡을 한 가족으로 만나는 법.

슈베르트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828년 가을, 마지막 세 곡의 피아노 소나타를 잇따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이 곡들이 연주회의 단골이 된 것은 그로부터 거의 백 년이 지나서예요.

방치의 이유는 곡이 약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엉뚱한 잣대로 잰 탓입니다. 그 잣대를 내려놓으면, 세 곡은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와요.

한 세기를 기다린 사정

서거 백 주년이던 1928년에, 라흐마니노프 같은 거장조차 슈베르트가 피아노 소나타를 썼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털어놓았다는 일화가 전할 정도예요. 악보로만 떠돌던 이 곡들은, 슈나벨과 에르트만 같은 연주자이자 교사가 길을 연 뒤에야 비로소 복권되기 시작했습니다.

오해의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슈베르트는 소나타를 길게 늘일 줄만 알았다」는 인상 — 출판 순서를 작곡 순서로 착각한 데서 온 오해였고, 다른 하나는 「베토벤을 흉내 내다 실패했다」는 평가였어요. 둘 다 베토벤만을 기준 삼아 슈베르트를 읽은 데서 나온 것입니다.

베토벤의 잣대를 내려놓기

알프레트 브렌델은 이 두 작곡가의 차이를 건축에 빗대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베토벤이 한 요소에서 다음 요소를 끌어내며 벽돌을 쌓듯 짓는다면, 슈베르트는 풍경 속을 걷다 마주친 것을 그대로 펼쳐 놓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슈베르트의 소나타에서는 사건이 당혹스러울 만큼 천연덕스럽게 그냥 일어납니다.

이 우연성은 약점이 아니라 슈베르트의 문법이에요. 베토벤 소나타를 들을 때 우리는 늘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지만, 슈베르트는 듣는 이를 꿈속에 데려다 놓습니다. 형식은 질서를 흉내 내는 얇은 막일 뿐, 그 아래에는 전혀 다른 흐름이 비쳐요. 연주자가 「베토벤이라면 여기서 무엇을 했을까」 대신 「이 풍경은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물을 때, 곡이 비로소 말이 됩니다.

그래서 이 곡들을 「죽음을 앞둔 사람의 유언」으로 미리 정해 놓고 듣는 것도 함정입니다. 완성 시점의 슈베르트가 임박한 죽음을 알고 썼다는 근거는 약하고, 새로 나타난 찬가풍의 부드러움은 같은 시기에 쓴 미사곡의 영향일 뿐이에요. 비장미를 미리 덧칠하면, 오히려 곡 안의 진짜 불안과 악몽이 들리지 않습니다.

세 곡은 한 가족이다

세 소나타는 따로 떨어진 세 작품이 아니라, 같은 음형과 화성 재료를 주고받는 한 가족으로 들립니다. C단조의 위협(D.958)에서 출발해, 가장 넓은 A장조의 빛(D.959)을 지나, Bb장조의 체념한 평정(D.960)으로 가라앉는 흐름이에요. 한 곡씩 떼어 만나도 좋지만, 세 곡을 한 호흡으로 들으면 서로가 서로를 비춰 줍니다.

  • 슈베르트 — 소나타 19번 D.958 (1악장)
    D.958 · pianolog Lv 7 · C단조

    세 곡 중 가장 베토벤에 가까워 보이는 출발이에요. 첫 줄들이 곡 전체의 재료를 미리 깔아 두는 자리라, 첫머리의 동기 처리가 악장 전체의 일관성을 정합니다. 베토벤 C단조 변주곡과 닮은 입구이지만, 여기서는 질서가 아니라 쫓기는 사람의 운동에 가까워요. 죽음의 질주처럼 내달리는 6/8 피날레까지 보면 곡 전체가 어둡고 거친 쪽으로 기웁니다.

  • 슈베르트 — 소나타 20번 D.959 (1악장)
    D.959 · pianolog Lv 7 · A장조

    셋 중 가장 넓은 세계. 가장 밝은 A장조의 문을 열고 들어가지만, 그 안에 가장 어두운 대척점이 함께 들어 있어요. 당당한 첫 화음의 행렬에서 출발해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데, 코다에서 그 첫 악상을 팀파니 일격 없이 속삭이듯 되부르는 마무리가 이 곡의 성격을 요약합니다.

  • 느린 악장이라 만만해 보이지만, 진짜 난이도는 손가락이 아니라 감정 설계에 있어요. 황량한 우아함 뒤에 광기가 숨어 있다가 중간부에서 터져 나오는데, 그 격렬한 분출과 바깥 부분의 황량함 사이의 낙차를 견뎌야 합니다. 분출이 난데없이 들리지 않도록, 악장 첫머리의 멜랑콜리에서 천천히 자라나오게 하는 게 이 곡의 관건이에요.

  • 슈베르트 — 소나타 21번 D.960 (1악장)
    D.960 · pianolog Lv 7 · Bb장조

    셋 중 가장 체념에 가까운 평정. 음표 난이도보다 페이싱이 곡의 중심이라, molto moderato를 늘어지는 8박이 아니라 「측정된 알레그로」의 차분한 흐름으로 잡아야 합니다. 여덟째 마디의 낮은 트릴은 방해물이 아니라, 정적 속에서 음악과 침묵이 잠깐 마주 보게 하는 장치예요. pp로.

이 곡들을 만나기 전에

여기 고른 악장들은 pianolog Lv 7 안팎이지만, 손가락 난이도만 보고 고르면 길을 잃기 쉬워요. 이 곡들의 벽은 빠른 음형이 아니라 시간과 침묵을 다루는 일에 있습니다. 한 곡 전체를 무대에 올리기 전에, 느린 악장 하나를 따로 오래 데리고 있어 보는 편이 좋아요 — 특히 D.959의 Andantino는 그 자체로 하나의 시험입니다.

제시부 반복 같은 구조적 선택도 미리 정해 두면 헛돌이가 줄어듭니다. 브렌델은 제시부 반복이 곡에 따라 군더더기이거나 오히려 해롭다고 보았고, 반복이 꼭 필요한 곡으로는 D.850 하나만 꼽았어요. D.960 1악장에 대해서는, 되돌아가는 그 이행 마디들이 다른 두 소나타에서 넘어온 이물질이라며 반복을 빼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곡 상세 페이지의 「판본 이슈」와 「레벨 판정 메모」에 이런 갈림길을 곡마다 적어 두었으니, 악보를 펴기 전에 한 번 읽어 두면 좋습니다.

결론

슈베르트의 마지막 소나타가 늦게 도착한 것은 곡이 덜 여물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오래 베토벤의 기준으로만 이 곡들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을 내려놓고 「유언」이라는 미리 정한 결말까지 지우고 나면, 비로소 이 음악 자체의 걸음걸이가 들립니다.

세 곡 중 어디서 시작해도 괜찮지만, 한 곡으로 끝내지 않는 편을 권합니다. 이 소나타들은 서로의 각주 같아서, 한 곡을 손에 익힐수록 나머지 두 곡이 더 또렷하게 들리니까요. 한 곡을 완성하는 일만큼이나, 세 곡 사이를 오가며 같은 동기가 어떻게 옷을 바꿔 입는지 듣는 일이 이 음악이 주는 보상입니다.